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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이란 공격이 시작됐다. 침략의 구실로 삼았던 이란의 핵 개발과 임박한 위협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명백한 전쟁 범죄 사례도 쌓이고 있다. 미국은 전쟁 시작과 함께 이란의 초등학교를 폭격했다. 희생자는 무려 170명이 넘는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3월 5일에는 인도양 해역을 지나던 이란 군함이 미국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사망자는 최소 80명 이상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전쟁이 벌어진 곳이 중동지역이다. 그것도 혈맹인 미국이 전쟁의 당사자다. 적을 공유하면서 서로 도와주는 존재가 동맹이다. 게다가 1954년 체결한 한미방위조약에서 규정한 작전지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을 포함한다. 전문에 나오는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하며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조직”이 되도록 하겠다는 문구를 통해서다.
태평양지역과 이란은 무관하니까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이란을 돕고 있다고 밝혔고 중국도 위성항법시스템 베이더우(BeiDou?北斗)를 공유하는 한편 군사기술 협력이나 전략물자 거래 등으로 힘을 보태는 상황이다. 미국도 벌써 동맹의 의무를 요구 중이다. 벌써 미군이 들여왔던 패트리엇과 사드 미사일은 중동으로 반출된 상태다. 한국 군대가 호출되는 것 역시 시간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는 작전에 한국 군함을 요구했다.
전쟁 공론장이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광장으로 전쟁과 관련한 각종 정보가 교환되고, 자유롭게 논의되면서 공감대와 여론이 만들어진다. 단 평소와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전쟁의 최초 희생자는 진실이다”라는 말처럼 이 광장에서 진실을 찾는 건 훨씬 어렵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한 정보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온갖 허위 정보가 넘쳐난다. 그래서 ‘정보 풍요의 역설’로 정보가 많아질수록 혼돈과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가 불거진다.
밤길을 걸을 때 우리는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정한다. 공론장에도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언론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수가 그렇게 믿는다. 언론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증거 중 하나가 ‘언론윤리헌장’이다. 자신의 목표로 “인권을 옹호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추구”한다고 설정했다. 헌법을 통해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고 약속을 한 터라 적용 대상에는 국제사회도 포함된다.
전쟁 공론장에 적용할 수 있는 직업윤리도 나온다. 첫째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한다. 둘째 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검증하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한다. 셋째 대립하는 관점과 주장이 표출되고 조정될 수 있는 토론장을 제공한다. 넷째 진영논리에 빠져 특정 세력을 편들거나 반대 세력을 과도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차이와 불화를 침소봉대해 갈등을 극대화하는 보도 태도를 지양한다. 다섯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취재는 익명성을 악용한 허위정보와 여론 조작 위험 등을 감안해 사실을 검증한다.
언론이 공개적으로 약속한 내용이다.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공동체와 맺은 일종의 계약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약속은 제대로 안 지켜진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만 주로 대변한다. 그들의 말이라면 최소한의 검증조차 망설인다. 국제연합(UN)에서 합의한 무력 사용의 금지를 정면으로 어긴 침략 국가의 앵무새 같다고 할까. 이중잣대는 더 문제다. 이란의 언론 검열은 준엄하게 꾸짖으면서도 미국, 이스라엘, 걸프협력국의 검열은 다루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은 외면한 채 전쟁 비용만 보도하는 것도 문제다. 금융시장과 원유 가격만 안정이 되면 ‘강 건너 불구경’해도 된다는 태도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라는 말과 달리 첨단무기의 위력만 강조한다.
물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동맹의 의무라는 것도 있다. 뜻은 있어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장애물이 왜 없을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공동체와 맺은 계약이라 신의와 성실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만약 그게 싫으면 지금 언론이 누리는 신뢰와 특혜는 철회되는 게 맞다. 그게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