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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필자에게는 유독 깊이 각인된 사건이 있다. 계엄 직후 ‘스카이데일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겨냥해 허위 보도를 쏟아 냈던 일이다. 이 매체는 선거부정을 획책하던 중국인 해커 99명이 당국에 의해 붙잡혀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로 압송됐다는 황당무계한 보도도 했다. 상식적인 매체라면 당연히 제시해야 할 최소한의 근거는 물론 사실에 대한 교차 검증도 없었다. 오보의 차원을 넘어선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흔든 악의적 왜곡이었다.
보도가 나간 후 흐름은 더 충격적이었다. 어떤 기관도 해당 언론사를 제지하지 못했다. 중앙선관위는 오보를 쏟아낼 때마다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을 뿐이었다. 공공기관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MBC의 ‘바이든 - 날리면’ 보도에서 우악스럽게 달려들던 막강한 당국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틈에 허위보도는 몇 주간 정치담론의 중심을 장악하며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이 얼마나 보도 윤리를 저버리고 있는지, 또 윤리규정을 위반한 매체에 우리 사회의 대응이 얼마나 무기력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역할이었다. 이 보도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선관위 해산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면서도 해명·반론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최고 수위의 ‘경고’와 ‘자사게재 경고’ 중징계를 의결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 징계 조치를 뒤늦게 시행했지만 최소한 언론 내부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 경고음을 울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반감은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국회와 일부 시민단체는 허위조작정보 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를 두고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비판만 할 수 있을까? 지금 언론계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력이나 자본의 개입만이 아니다. 이대로 가면 언론에 대한 신뢰가 붕괴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에서부터 중장기 방안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신문윤리위를 비롯해 언론 윤리를 다루는 기구들의 권위가 강화돼야 한다. 스카이데일리가 허위 보도 기자를 징계하고 이후 종이신문 발행을 일시 중단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이라는 대선 결과에 따른 자구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기구들의 심의 결과나 제재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신문의 반복적인 허위 보도나 윤리 위반에 대해서는 단순히 ‘권고’나 ‘주의’ 조치에 그치지 않고 공개 제명과 광고 중단, 포털 노출 제한 등 실질적 제재를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언론자율규제기구인 IPSO(Independent Press Standards Organisation, 독립언론기준기구)처럼 언론과 시민이 공동으로 윤리규범을 다루는 공적 기구도 생각해 봄직하다. 이 기구는 2011년 루퍼트 머독 소유의 신문들이 수년간 광범위한 불법 정보수집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나자 기존 자율규제기구가 무기력했다는 비판 속에 신설됐다. 민간 독립기구이면서도 구속력 있는 윤리강령과 실질 제재 권한(벌금·정정보도 등), 시민이 직접 제기할 수 있는 불만 절차, 언론과 비언론이 섞인 거버넌스를 통해 자율성과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2차대전 즈음 미국 언론은 선정주의 편파보도 비판이 비등하자 시카고대 총장인 로버트 허치슨을 비롯한 13명의 저명인사들로 ‘허치슨 위원회’를 조직하여 바람직한 언론상에 대해 연구했다. 언론의 소유 집중, 광고주와 자본의 영향, 정부 검열, 언론인의 직업윤리, 시민이 실제로 어떤 정보를 받고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조사·분석한 뒤 그 유명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A Free and Responsible Press)’ 보고서를 발표했다. “언론 자유는 무제한적 특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한 자유”라고 규정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언론의 5가지 기본 기능은 오늘날 한국의 언론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정확하고, 진실되며, 포괄적인 일상 사건 보도를 강조하면서 단순 객관주의를 비판하고 맥락과 설명을 포함한‘포괄적 진실’을 요구했다. ‘공론장의 의미 있는 논평·비판 제공’과 ‘권력과 정책에 대한 책임 있는 비판과 다양한 관점의 논의를 통한 민주적 토론 촉진’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이 ‘전문적 윤리 기준과 자율규제 확립’이다. 언론이 스스로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와 자율규제 장치를 갖추지 않으면 결국 외부의 강제규제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는 ‘스카이데일리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계에서 스카이데일리의 허위 보도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 언론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