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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34차 심의결정 현황 /  [기사] 신문윤리강령  위반

주의

 
 

2019-1141 “나는 같이 죽지 못한 죄인이었다…정신과 치료도 보탬 안돼”

경상일보       발행인  엄  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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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문

      경상일보 2019년 8월 12일자 3면「“나는 같이 죽지 못한 죄인이었다…정신과 치료도 보탬 안돼”」기사와 제목, 관련 사진에 대하여 ‘주의’ 조처한다.

     

  • 이 유

      1. 경상일보는 위 적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2016년 10월5일, 그날 이후 나는 같이 죽지 못한 죄인으로 살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울산 북구 농소119안전센터 고(故) 정희국(41) 소방장(본보 8월9일 6면)은 태풍 차바 이후 3년 가까이 동료이자 동생이었던 고(故) 강기봉 소방교를 생각하며 자책했다. 매년 강 소방교의 생일과 기일에 고향인 제주도에 들렀다. 그의 메모와 수첩 등 유품에는 온통 강 소방교 관련 내용으로 빼곡했다.
      11일 본보가 입수한 정희국 소방장이 생전 남긴 메모에는 태풍 차바 당시 강 소방교와 함께 출동했던 정 소방장이 당시를 상세하게 기록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메모는 지난 6월께 정 소방장의 휴대폰에 남긴 메모다. 태풍 차바 내습 당시 구급대원이었던 정 소방장은 강 소방교와 함께 구급차에 대기중이었다. 당시 계곡에 구조하러 출동한 펌프차가 고립됐고 이들은 펌프차 지원을 위해 출발했다.
      가는 길에 마을사람들이 구급차를 가로막고 “물 속 차안에 사람이 고립됐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지나칠 수 없었던 정 소방장과 강 소방교는 요구조자를 확인하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갔다. 많은 비로 댐이 월류해 물살이 급격하게 빨라지고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량 내 요구조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불어난 물살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확인결과 차량 안에 요구조자는 없었다. 발길을 돌리려 했으나 물살이 너무 불어난 뒤였다. 정 소방장은 전봇대에 박힌 사다리 정(큰 못)을 붙잡아 버티기 수월했다. 그러나 강 소방교는 그냥 둥근 쇠기둥을 잡고 있어 버티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불어난 강 한 가운데서 더이상 물살을 버티지 못했다. 물살에 휩쓸린 뒤 정 소방장은 물 속에서 몇 바퀴를 뒹굴면서 수면 위로 떴을 때 강 소방교를 목격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희국 소방장의 개인 캐비넷. 캐비넷 옷가지 사이에는 강기봉 소방교의 근무복이 걸려 있었다
      정 소방장은 약 2㎞ 가량 물살에 휩쓸려 내려오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빠른 속도의 좁은 직선 강에서 꺾이는 부분에서 운 좋게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온 것이다. 그가 센터에 전화해 처음 한 말은 “기봉이는?” 이었다.

    울산 북구 농소119안전센터 정희국 소방장의 차 안에서 발견된 메모
      구조후 병원에서 치료받던 그는 강 소방교의 발견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 가볼 수 없었다. 그는 강 소방교의 시신 수습현장에 가보지 못해 얼굴을 닦아주지 못했던 걸 가장 괴로워했다. 강 소방교의 부친에게는 “혼자 살아 돌아와 죄송하다”는 얘길 못했다며 스스로 자책했다.
      강 소방교 순직 이후 정 소방장은 2017년 8월에 제주도를 찾았다. 8월은 강 소방교의 생일이있는 달이다. 오는 10월5일에도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해놓았었다. 10월5일은 강 소방교의 기일이다. 게다가 지난 5일 정 소방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인 4일이 바로 강 소방교의 생일이었다. 지인들에 따르면 정 소방장은 이날 온산센터 근무 당시 함께 일하던 후배와 만났다. 후배와 정 소방장, 강 소방교는 온산센터 근무 당시 구급차에 함께 탑승했다고 한다. 이들은 강 소방교를 생각하며 매년 8월4일 만나 술잔 하나 더 놓고 셋이 소주 한 잔을 기울여왔다.
      정 소방장의 차 안에서도 강 소방교와 연관된 메모가 발견됐다. 메모는 강 소방교 순직 이후 8~9개월 이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에는 “기봉이가 없고 지금 9개월이 지나간다. 감당이 어렵다”거나 “기봉이 이후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왔지만 괴로움의 반복이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고 적혀있다.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로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동현 농소센터장은 “차바 이후 희국이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겉으로는 밝은 척 하고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자책하고 괴로워했을 희국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 소방장은 태풍 차바 이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았고 우울증 약도 복용했다. 그러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사고 이후 그를 버티게 했던 두 딸과 가족들마저 남겨둔 채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게 했다.
      울산소방본부와 북부소방서는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정 소방장의 순직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며 이채익 국회의원도 소방청에 정 소방장의 업무상 재해가 승인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순직 인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법률자문 등 순직자 입증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지난 2008년 이후 자살의 업무상 재해승인 차례는 총 4건이다.』
    <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3385 >
      2. 위 기사에 대하여 윤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경상일보의 위 기사는 구조현장에서 동료를 잃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소방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연을 다루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정희국 소방장은 지난 8월 5일 울산의 한 저수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3년 전 태풍 ‘차바’ 때 함께 출동했던, 동생처럼 아꼈던 동료 강기봉 소방교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이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이와 관련한 메모를 남겼다.
      기사는『“2016년 10월5일, 그날 이후 나는 같이 죽지 못한 죄인으로 살았다.”』는 정 소방장의 메모를 소개했다. 기사는 이어 메모에는 “기봉이가 없고 지금 9개월이 지나간다. 감당이 어렵다”, “기봉이 이후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왔지만 괴로움의 반복이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고 적혀있다고 기술했다. 이처럼 기사는 정 소방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정황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자살보도준칙에 어긋난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데, 그 동기를 이같이 단순화해 보도할 경우 유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자살을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잘못 생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
      편집자는 유서로 비쳐질 수 있는 메모 사진과 함께 정 소방장의 개인 캐비넷에 강기봉 소방교의 근무복이 함께 걸려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게다가 기사 큰 제목을「“나는 같이 죽지 못한 죄인이었다…”」라고 감성적인 문구로 달았다. 이 같은 사진과 제목은 기사의 주제가 자살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자극적으로 비쳐질 여지가 다분하다.
      위 기사는 정 소방장의 순직 처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강조하기 위해 동료를 잃은 정 소방장이 겪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보도태도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고 자살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7조「범죄보도와 인권존중」④(자살보도의 신중)을 위반했다고 인정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 적용 조항

    신문윤리실천요강 제7조「범죄보도와 인권존중」④(자살보도의 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