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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차 심의결정 현황 /  [온라인기사] 신문윤리강령  위반

경고

 
 

2017-3055 “큰일 났다” 탄핵기간에 북한 전격…

아시아경제     발행인  최  영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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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문

      아시아경제(asiae.co.kr) 2017년 1월 6일자「“큰일 났다” 탄핵기간에 북한 전격…」제목의 기사에 대하여 ‘경고’ 한다.
     

  • 이 유

      1. 아시아경제의 위 적시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경제
    4차 북핵실험 1년… 핵실험때마다 대북제재 강해졌다
    최종수정 2017.01.06. 11:09
    기사입력 2017.01.06 08:34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6일 북한이 기습적으로 4차 핵실험을 감행한지 1년을 맞았다. 이후 북한은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연이어 발사하는 등 도발을 이어가면서 남북대화 채널도 모두 끊겼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살얼음판 관계를 유지해왔다.

    ①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의 선순환을 추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고비 때마다 터진 북핵 문제는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②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2006년 10월이다. 당시 노무현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실시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 사태이며, 정부도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③정부내에서도 대북 포용정책 재검토하지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북한 핵실험 대응조치와 관련해 '개성공단은 유지하더라도 금강산관광은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④하지만 노무현정부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북한의 첫 핵실험 1년 뒤인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ㆍ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다. 5ㆍ24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교류ㆍ협력은 배제시켰다.
    ⑤이명박 정부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고(故)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관광도 중단시켰다.
    ⑥현정부 들어서도 북한의 핵실험 도발은 이어졌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으로 또 다시 남북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⑦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는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드레스덴 선언', '통일 대박론' 등의 구상을 내놓으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했다.
    ⑧2015년 '8ㆍ25 합의' 이후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 ?
    ⑨그러나 북한이 올해 1월 6일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 발사를 단행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 일변도로 돌아섰다.
    ⑩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대북제재 차원에서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꼽히던 개성공단 가동의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이후 남북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ㆍ협력도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으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남북관계는 '올스톱' 상태가 됐다.
    ⑪북한이 지난 9월 9일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⑫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폐기되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ㆍ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대북정책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⑬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이라고 부른 다음,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은 올해 6차 핵실험 감행할 가능성도 높다. 한 장관은 지난해 말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갱도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 한 개의 갱도는 항상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났다고 평가하고 나머지 갱도에서 추가적인 움직임이 있다"며 북한이 언제든 6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풍계리 핵실험장 2번 갱도 뿐 아니라 3번 갱도의 입구에도 대형 위장막을 설치함에 따라 이른 시일 내 6차 핵실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군 당국이 핵실험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3번 갱도에서 6차 핵실험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유력한 근거도 입구에 설치된 대형 위장막 때문이다.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9일)은 1번 갱도에서, 2차(2009년 5월25일)ㆍ3차(2013년 2월12일)ㆍ4차(2016년 1월6일)는 2번 갱도에서 실시했다. 지난 9일 5차 핵실험 장소도 4차 핵실험이 이뤄졌던 곳에서 400~500m 떨어져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0608272245064 >

    연합뉴스
    <北 핵실험 10년> ②김정은 핵개발 폭주에 남북관계 파탄
    송고시간  2016/10/06 08:00
    北 핵·미사일 개발 가속화…정부, 제재·압박에 '올인'
    朴대통령 탈북 촉구 발언…'레짐 체인지' 염두 해석도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북핵 문제는 남북관계를 옭아매는 족쇄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남북관계는 급속 냉각됐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연이어 발사하는 등 핵·미사일 폭주에 나서면서 남북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됐다.

    ①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의 선순환을 추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고비 때마다 터진 북핵 문제는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②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2006년 10월 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실시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 사태이며, 정부도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성토하면서 대북 포용정책 재검토를 비롯한 강력 대응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③당시 노무현 정부 내에선 북한 핵실험 대응조치와 관련해 '개성공단은 유지하더라도 금강산관광은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④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금강산관광도 당시에는 중단되지 않았다. 북한의 첫 핵실험 1년 뒤인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다.
    ⑤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취지의 '비핵·개방 3000'을 제시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대폭 수정했다. 그해 7월 고(故)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은 중단됐고,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3월)과 연평도 포격 도발(11월)을 감행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에 책임을 물어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교류·협력은 크게 후퇴했다.
    ⑥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으로 또 다시 남북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⑦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는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드레스덴 선언', '통일 대박론' 등의 구상을 내놓으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했다.
    ⑧지난해 '8·25 합의' 이후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
    ⑨그러나 북한이 올해 1월 6일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 발사를 단행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 일변도로 돌아섰다.
    ⑩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대북제재 차원에서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꼽히던 개성공단 가동의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이후 남북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으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남북관계는 '올스톱' 상태가 됐다.
    ⑪북한이 지난 9월 9일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⑬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의 탈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면서 우리 정부가 김정은 체제의 붕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이라고 부른 다음,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⑫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폐기되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대북정책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6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통제불능'이라고 했다"며 "그것은 김정은 정권을 대화나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거기서 더 나아간 박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는 '우리는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할 것인데, 그렇게 했을 때 봉기하라'고 북한 주민들을 부추기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hojun@yna.co.kr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03/0200000000AKR20161003072300014.HTML?input=1195m >

    < 캡처시각 17. 1. 7. 10. 57 >
                            
      2. 위 보도에 대하여 윤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위 기사는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1년을 맞아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대북관계를 정리했다. 그런데 리드와 말미를 제외한 기사 핵심 부분은 지난해 10월 6일 연합뉴스가 송고한 내용을 그대로 베끼었다(빨간 부분). ①~⑬번 문장?단락을 비교하면 일부 표현만 바꾸었을 분 대부분이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문장 구성도 ⑫와 ⑬의 순서를 바꾼 데 불과하다.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닌 해설기사에서 주요 내용을 표절한 것은 신문윤리강령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네이버 뉴스스탠드 제목을 본문과는 달리「“큰일 났다” 탄핵기간에 북한 전격…」이라 붙였다. 북한이 권력 공백기라 할 탄핵 기간에 도발을 감행했거나 할 조짐이 있다는 투이다. 그러나 기사에는 북한이 올해 6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만 했지 ‘탄핵’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보도는 신문윤리강령 제2조「언론의 책임」,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출판물의 전재와 인용」①(통신기사의 출처명시), ②(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 제10조「편집지침」①(표제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인정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 적용 조항

    신문윤리강령 제2조「언론의 책임」,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출판물의 전재와 인용」①(통신기사의 출처명시), ②(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 제10조「편집지침」①(표제의 원칙)